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2017/04/22 21:14 by 해피밀

"당신에게 가장"으로 시작하는 질문은 항상 어렵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지 말하긴 어려웠지만, 가장 행복한 느낌이 들었던 때는 답할 수 있었다. 일곱살이었다. 나는 한성빌라 307호 안방에 누워, 집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아래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엄마는 솜이불의 이불청을 꼬매고 있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거실에 가셨다. 엄마가 돌아오면 깜짝 놀래켜야지. 나는 어머니가 아직 마치지 못하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불청과 솜이불 사이공간.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의 통화는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얇은 이불청 안으로는 햇살이 뜨겁게 배어들기만 할뿐 열기가 빠져나가진 못했다. 그 속의 온도는 점점 올라갔다. 밖은 아직 겨울이었지만, 그곳은 따뜻한 봄이었다. 뭐가 그리 고단했는지 어렴풋이 잠이 들었던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통화가 끝나고 돌아온 엄마는 불룩하게 부푼 이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기 힘들었을 테고, 아이의 장난에 잠깐이나마 과거를 회상했을 것 같다. 아무튼,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난 나는 이불속이 아닌 이제 막 햇살에 바짝 마른 이불위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코로는 잘 마른 면섬유 특유의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바로 그 때다. 지금 내가 단언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기분에 대한 기억. 이젠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져 가지만, 이 때를 회상하면 정말이지 편안하기 그지 없는 기분에 빠져들곤 한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 국제아파트 103동 2016/09/16 16:11 by 해피밀

같은 아파트에 다른 나라가 존재한다

출국이 자유롭지 않은 나는, 친구로 부터 좋은 방법이 있다며 추천을 받아, 중국여행을 계획했다. 낮에는 공연을 보러 갔다가 오후에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집앞에 마실 나온듯 보이겠단 심산인것 같았다. 꽤 추운 날씨임에도 머리칼은 다 말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카디건을 걸친 왼쪽 가슴에는 어울리지 않는 빨간 새 그림이 붙어있다. 뭔가 웃겼다.

중국친구의 집은 좁은 아파트였다.
첫날은 여기서 묵고 이튿날은 미리 예약한 호텔에 묵을 계획이다. 잠시 티비를 보며 여장을 푼다. 안방에서 티비를 한참 보는데, 채널을 돌리자, 집에서 보던 한국 드라마가 나오고 있다.

금세 티비가 시들해진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멀리보이는 바닷가가 눈에 익다.
자세히 보니 내가 살던 부산의 아파트에서 보던 풍경과 같다.

아니 거의 흡사하다. 눈으로만 볼때 느껴지는 감상은 묘하게 다르지만, 사물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놓고 말로 묘사하면 내가 한국서 본 풍경과 동일할것 같다.

바깥 풍경을 보다말고 아내의 친구 남편과 실랑이를 한번 하고는 깜깜한 밤중에 이게 뭐지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두번째 숙소인 호텔로 방을 옮겨가는 길.
친구의 집에서 차로 한시간은 달려온것 같다. 스웨터 공장을 한다는 친구의 봉고차는 운전석, 조수석쪽과 짐칸은 튼실한 강판으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또, 우리 부부가 탄 짐칸에는, 창에 비닐이 붙여져 밖을 볼 수 없었다.
호텔 앞에 이르자 눈앞의 풍경이 생경하다. 중국에는 이번이 두번째이긴 하지만, 티비로 보아왔던 중국과도 다르다. 일본의 번화가에 청나라의 골목을 이어붙인 느낌이다. 짧은 여행이라 마침 짐도 없던 우리는 호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풍경을 즐기며 서성인다. 아내의 유학시절 친구인 하메이와 연락이 닿았단다. 하메이는 적도기니 사람이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와서 대학을 다니다가,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간 나의 아내를 알게 된 것이었다. 아내말론 지금은 아시아 어느나라에선가 할머니와 둘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얘기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버지가 정치적으로 입지가 곤란해져서 둘이서 지낸다 하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쓸데없는 생각에 잠길 무렵, 우리가 예약한 호텔에서 얼굴이 까무잡잡한 몇사람이 급하게 뛰어 나오며 손을 젓는다. 그러자 우리 가까이에 우리 모양으로 서있던 여러 인파가 호텔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직원들이 외치는 중국말을 아내가 해석해준다. 단속이 있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뜻이란다.
'단속?'
호텔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아내가 내게 호텔방번호를 확인해야 한다며, 즉석복권처럼 은박을 벗겨야하는 종이카드 두장을 내민다. 무슨소리냐며 물으려는데, 출국전 아내에게 들었던 정보들이 머리속에서 떠오른다. 기록에 남지 않는 해외 여행이기에 호텔예약도 타인의 신분으로 하고 기록이 남지 않는 오프라인으로 예약 확인증?을 받은 것이다.은박은 송달과정에서 다른사람에게 노출을 막기 위한 것.
'비밀도 좋고 프라이버시도 좋지만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 사람인가 우리가?'
의문의 꼬리를 붙잡기엔 내 주위 상황이 너무 급박해 보였다. 주위 사람들은 각 각 자신이 예약한 방을 찾아 속속 들어가고 있는 듯 했고, 로비와 복도, 계단이 한데 섞인듯한 복잡한 구조의 호텔안 풍경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의 분주한 움직임만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재빨리 위쪽카드의 은박을 벗겨내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남자의 증명사진이 인쇄되어 있고 좌측 위부터 성별 : 남자. 기간 :xx.xx.xx~xx.xx.xx. 호실 : 북6호이라 적혀 있었다. 우리 부부를 위한 방을 알려주는 카드는 하나이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이 역시 지금의 급박한 상황에선 메아리 없는 물음일것이리라. 이어서 아래쪽에 있던 카드를 긁기 시작했다. 위쪽 카드보다는 조금 얇은 느낌의 카드다. 은박을 벗겨내는데, 성별 : 여자. 호실 : 여자단체실 이란 글자와 인쇄된 증명사진은 또 남자사진..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주위에는 이제 유니폼를 입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들이 빠른 걸음 걸이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것만 보인다.
왜 굳이 애매한 여행을 시작했을까. 평소, 정도가 아니면 가까이 하지 않던 내가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이 카드는 뭘까. 방문을 열수 있는 태그라도 들어 있는것일까?
아내랑 나는 방을 따로 써야하나?
왜 둘다 남자 사진이 인쇄 된거지? 저 사진속 인물이 여기서의 내 공식적 신분인가?
어느것 하나 답을 추측해 낼 수 없는 질문들이다.

'여보'

날카롭진 않지만 확실히 급하게 나를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내가 서있던 왼쪽복도로 눈을 돌렸지만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왼쪽복도에서 걸어와 내 옆을 지나던 검은 유니폼을 입은 남자직원의 어깨와 벽사이에 내 왼쪽어깨가 걸렸다. 나는 뒤쪽으로 밀려갔다. 어지간히도 급한모양이라 생각하려는데 좀 더 멀어진 듯한 아내의 목소리가 한번 더 들린다. 이제 나도 아내를 부르기 시작한다. 실내지만 내 목청껏 크게 부른다. 소리를 지르며, 여전히 남자직원의 어깨에 걸린상태로 밀려가는데, 먼 곳의 여직원이 뭐라 말하는 것처럼 입술을 실룩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쪽엔 내 어깨에걸린 무례한 남자직원, 저멀리 중얼거리는 여자직원 말고는 사람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옷차림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카디건을 입었다. 왼쪽 가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발을뗀 자리에는 언뜻 빨간 헝겊조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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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티비가 시들해진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멀리보이는 바닷가가 눈에 익다.
자세히 보니 내가 살던 부산의 아파트에서 보던 풍경과 같다.
"우리 저기 가보자. 103동. 저기 우리 살던 그 아파트 같은데. 여기 창문쪽에 보이는 길로 가면 갈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사실 한국에 있는거 아냐? 아님 중국이 사실 부산하고 이어져 있나..하하하"
"워 쓰..."
알아 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시작된 그의 말은 짐작으로 십분은 넘게 이어졌다. 평소라면 그의 논리와 가정에 이것저것 따져물을 나지만, 아내의 친구 남편.. 어려운 관계를 생각하며 그냥 자리에 누웠다.

여긴 부산 감만동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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